
1980년대 중반에 등장한 끈 이론은 양자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을 통일하는 가장 그럴듯한 후부를 자처하면서 전세계 이론 물리학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아왔습니다. 끈이론에 막강한 위력을 부여한 이론적 기초는 '유별난 기하학'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끝이 자체 모순없이 진동하려면 공간은 10차원이나 6차원이어야 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물리학에서 안방마님을 차지하고 있는 끈 이론을 다룹니다.
끈 이론 개요
끈 이론은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입자가 점 모양이 아니라 진동하는 작은 끈이라고 제안하는 이론적 틀입니다. 이는 하나의 일관된 프레임워크 내에서 알려진 모든 힘과 입자를 설명하여 양자 역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통합하려고 합니다.
공간에는 양성자의 1,000억 X 10억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미세한 끈이 진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양한 모드로 진동할 수 있으며, 끈의 각진동모드는 하나의 입자에 대응됩니다. 그런데 끈의 크기가 너무 작기 때문에 먼 거리에서 보면 '끈의 공명'과 '입자'를 구별할 수 없습니다. 입자를 엄청난비율로 확대해서 본다면 점이 아니라 진동하는 끈이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입자는 각기 다른 진동수로 진동하는 '공명'일 뿐입니다. 공명이라는 단어가 다소 낯설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우리는 공명과 매우 친한 사이 입니다. 샤워하면서 노래를 불러본 적이 있나요? 그런 적이 있다면 가소로 데뷔할 생각도 한번쯤 해봤을 것입니다. 원래 사람의 목소리는 작고, 약하고, 음정도 불안하지만 욕실에서 노래를 부르면 오페라 가수 빰칠 정도로 목소리가 웅장해집니다. 욕실 크기에 잘 들어맞는 음파는 스스로 공명을 일으켜 몇 배로 증폭되고, 그렇지 않은 음파는 상쇄되어 사라집니다. 그래서 음치인 사람도 욕실에서 노래를 부르면 음정이 평소보다 정확하고 음량도 커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주에 존재하는 입자들은 근본적 실체가 아닙니다. 전자는 뉴트리노보다 근본적이지 않습니다. 이들은 근본적 실체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리의 관측도구가 내부구조를 볼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끈 이론은 우리에게 '유한한 양자보정을 제공한 최초의 양자중력이론'인 셈입니다.
주요 원칙
‘쿼크’라는 입자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쿼크가 3개 모여 양성자, 중성자 같은 아원자 입자를 이룬다고. 그러나 이 쿼크는 양성자나 전자처럼 혼자서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물리학자들은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아원자 입자를 가속해 강하게 충돌시키고 그것에서 어떤 입자들이 어떤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튀어나오는지 조사하는 것뿐입니다.
물론 이때도 쿼크가 직접 튀어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입자 물리학의 표준 모형’이라는 ‘이론’입니다. 이 표준 모형은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정확하고 정밀한 이론입니다. 표준 모형에 비하면 인간의 뇌가 만든 다른 모든 이론은 모두 투박하다 할 정도입니다. 이 표준 모형에 따르면 세상 만물을 이루는 기본 입자는 여섯 가지 쿼크, 전자를 포함한 역시 여섯 가지 렙톤(경입자), 그리고 그들 사이의 상호 작용을 매개하는 열두 가지의 게이지 보손, 그리고 흔히 물질 질량의 근원이라고 설명하는 힉스 입자로 구성됩니다.
진동하는 끈: 끈 이론에 따르면, 이 작은 끈의 다양한 진동 모드에서 다양한 입자가 발생합니다. 진동의 다양한 주파수와 패턴은 질량과 전하와 같은 뚜렷한 입자 특성을 발생시킵니다.추가 차원: 세 가지 공간 차원(길이, 너비, 높이)만 고려하는 기존 이론과 달리 끈 이론은 입자 상호 작용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추가 컴팩트 차원(우리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는 작은 웅크린 차원)을 제안합니다.초대칭: 끈 이론은 페르미온(물질 입자)과 보존(힘을 운반하는 입자) 사이의 대칭인 초대칭을 도입합니다. 이 대칭은 입자 물리학의 기존 퍼즐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차원적 특성
왜 전자 등의 기본 입자는 서울이든, 평양이든, 달 아니 심지어 태양계를 벗어나 외부 은하에 있든 완벽히 같은 성질을 갖는 걸까요? 이것은 물리량이 불연속적인 값을 가진다는 양자 역학의 성질과 우주에 중심 따위는 없다는 상대성 이론을 결합하면 도출되는 필연적 결과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입자 물리학자에게 이것은 전혀 신비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표준 모형이 답하지 못하는 문제들은 너무 많습니다. 쿼크와 렙톤은 유사한 성질을 갖는 것들이 세 번 반복해서 나타난다. 쿼크 두 가지, 렙톤 두 가지가 모여 4인 가족을 이루는데 이런 가족이 셋 있습니다. 이것을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분 차원’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전후, 좌우, 상하 세 방향을 체험하는데, 이것이 공간의 3차원이다. 여기에 시간 1차원을 더해 우리는 4차원 세계에 살고 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공간에 방향이 더 있지만 그것이 너무나 작게 말려 있어 아직 관측되지 않았다고 해 봅시다. 그렇다면 세계는 5차원 이상이 됩니다. 그런 고차원 세계에서는 단지 한 가지 입자일 뿐인데 저차원 세계의 우리에게는 마치 다른 입자군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쿼크와 렙톤을 서로 다른 가족으로 보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주론 및 양자 중력에 대한 의미
1995년 샌타바버라대의 조지프 폴친스키는 끈 이론에 다양한 차원의 막을 포함하는 통합적 관점에서는 강하게 상호 작용하는 끈 이론과 양자장론을 정밀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해 끈 이론의 두 번째 도약을 이끌었습니다. 이처럼 끈 이론은 표준 모형 너머 미래 물리학의 길잡이로서 이론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습니다. 그러나 실험이라는 최종 심급을 통과하지는 못해 아직 온전한 과학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검증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바로 블랙홀이 시금석입니다.
1974년 케임브리지의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이 실은 온도를 갖고 있으며 다른 온도를 가진 물체처럼 빛을 낸다고 주장했습니다. 1996년 하버드의 앤드루 스트로민저와 캄란 바파는 끈 이론을 이용해 최초로 블랙홀의 엔트로피를 미시적으로 계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호킹은 또한 블랙홀이 정보를 파괴해 양자 역학 법칙을 위배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2019년 여러 학자는 블랙홀의 엔트로피 변화를 구체적으로 계산하고 블랙홀의 정보 손실 문제를 마침내 해결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끈 이론은 양자 역학과 중력을 조화시키는 잠재적인 경로를 제공합니다. 이는 "양자 중력"으로 알려진 어려운 목표입니다. 중력을 프레임워크에 통합함으로써 매우 높은 에너지나 양자 효과와 중력이 모두 중요한 블랙홀 근처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끈 이론은 초기 우주 동안의 우주 팽창에 대한 가능한 설명을 제공하거나 암흑 물질 및 암흑 에너지와 관련된 질문을 해결함으로써 우주론에 영향을 미칩니다.
결론
끈 이론의 역사는 50년 남짓 되었는데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끈 이론은 1968년 이탈리아 출신의 가브리엘레 베네치아노가 핵물리학적 충돌 실험 결과를 설명할 만한 공식을 제안하는 데서 시작됐습니다. 즉 베네치아노에겐 다양한 입자의 교환 가능성을 암시하는 핵물리학 충돌 실험 결과를 설명할 수학적 답이 있었고, 몇 년 후 그 답을 주는 이론이 실은 끈의 운동에서 유도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끈 이론은 우리의 인식 너머에 숨겨진 차원을 탐색하면서 모든 기본 힘과 입자에 대한 통일된 설명을 추구하는 물리학의 야심찬 노력을 나타냅니다. 잠재적인 의미는 양자 중력을 이해하는 것부터 우주의 신비를 밝히고 우주의 본질에 대한 인간 지식의 한계를 넓히는 것까지 다양합니다.
'과학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닉 레인의 미토콘드리아 - 박테리아에서 인간으로, 진화의 숨은 지배자 (0) | 2023.10.14 |
---|---|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 20세기 환경학 최고의 고전 (0) | 2023.10.13 |
브라이언 그린의 책 속으로의 매혹적인 여행 - 우리의 우주는 유일한가 (0) | 2023.10.13 |
티븐 핑커의 "빈 서판" 이해하기 - 인간은 본성을 타고나는가 (0) | 2023.10.12 |
다윈의 종의 기원을 엿보다 - 진화 생물학의 역량을 결집한 다윈 선집 (0) | 2023.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