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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에서 씨앗까지 푸릇한 생명체의 여정 "식물이라는 우주"

by 과학덕후문과샘 2023. 10. 30.

 

식물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분자생물학적 연구

 

주변을 둘러봅시다. 봄이면 싱그러운 연둣빛을 자랑하던 은행나무가 가을이면 노랗게 물듭니다. 겨울이면 잎이 다 떨어지고, 잎이 없이 더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나뭇가지에는 다음 봄을 준비하는 잎눈이 돋아 있습니다. 

"식물이라는 우주"는 식물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분자생물학적 연구,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애기장대 연구에 관한 책입니다. 물론 애기장대 이전에도, 이후에도 다양한 식물 종에 관한 연구는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2만여 개의 유전자로 이루어진 애기장대를 탐구하며 밝혀낸 발견들은 식물에 관한 연구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저자는 그런 면에서 애기장대를 위한 그리고 다른 식물 이야기도 곳곳에 담아내었습니다. 

 

식물의 발달

발아라는 식물 고유의 생명현상은 식혜를 만들거나 맥주를 만들때, 보리 싹을 얼마나 오랫동안 키울지에 대한 힌트 등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식물의 입장에서 발아를 촉진하는 것이 언제나 좋은 일일까? 씨는 모든 조건이 알맞은 때 발아가 되어야 합니다. 조건이 하나라도 맞지 않을 때 발아가 이루어지면, 그 식물체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베렐린에 의해 발아가 촉진되는 것만큼, 발아 이후에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조건이 갖추어질 때까지 발아를 억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연 상태에서 씨앗은 발아 직후에도 땅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땅을 뚫고 햇빛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남은 에너지를 아낌없이 쓰는 것입니다. 

식물세포는 세포벽 때문에 한 번 이웃한 세포는 죽을 때까지 붙어 있어야 합니다. 이웃한 세포들은 서로 세포벽을 공유하기 때문에 한 세포가 팽창하면 그 압력을 고스란히 이웃 세포가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세포가 계속 분열하는 지상부 정단분열조직 세포들은 거다란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새싹의 단계를 지나 본잎이 나오기 시작하는 애기장대는 점차 성숙해 갑니다. 애기장대 새싹에서 발현이 가장 많이 되는 miR156은 식물이 나이가 들수록 식물체 내에 발현량이 줄어듭니다. 이 miR156의 억제를 받은 SPL 단백질 전사인자들은 그 억제에서 벗어나 단백질량이 서서히 늘어납니다. 그러면서 애기장대 잎은 점점 길쭉해집니다. 이제 몇 가지 신호만 더 있으면, 꽃이 필 시간이 됩니다. 

 

꽃을 피우는 과정

식물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야 꽃이 피지만, 나이가 들었다 해서 무조건 꽃이 피지는 않습니다. 꽃이 핀다는 것은 곧 씨가 맺힌다는 뜻이기에 씨가 좋은 환경에서 발아하려면 꽃도 정확한 때 피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식물은 '나이'라는 내적인 지표 외에 외적 지표를 살피며 언제가 개화하기 좋을지 기다립니다. 그 외부 지표 중 하나가 바로 낮의 길이입니다. 

식물의 광주기성에 따라 장일식물, 단일식물, 중일식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애기장대는 장일식물, 벼는 단일식물입니다. 토마토는 중일식물로 분류됩니다. 낮이 길면 꽃이 피는 식물이 장일식물, 낮이 짧을 때 꽃이 피는 식물이 단일식물, 그리고 낮 길이와 상관없이 온도, 영양 조건 등에 의해 꽃이 피는 식물이 중일식물입니다. 그렇다면 식물은 낮의 길이를 어떻게 알까요? 장일식물일 때, 개화에 필요한 물질이 낮에만 합성되는 경우를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낮에만 합성되는 물질이 충분히 많아야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낮의 길이가 짧으면 개화 물질이 충분히 합성되지 못하고 밤이 되면 그 물질이 분해됩니다. 밤에만 합성되는 물질에 의해 개화가 이루어진다고 가정하면, 단일식물에도 이 가설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밤낮이 바뀌는 것이 마치 모래시계를 뒤집는 것과 유사해서 '모래시계' 모델이라 불렸습니다. 

 

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

식물도 병에 걸립니다. 녹이 슨 것처럼 잎이나 줄기에 누렇게, 혹은 하얀 반점이 나타나는 녹병, 잎이 시드는 마름병이나 시듦병, 잎 색깔이 얼룩덜룩해지거나 잎이 우는 모자이크병 등 그 종류도 다양합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식물에 병을 일으키는 건 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 등입니다. 이 다양한 미생물들을 식물이 어떻게 인식하는지 오랫동안 많은 이들이 궁금히 여겼습니다. 식물의 병에 관한 연구인 식물병리학은 작물 생산량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역사가 깁니다. 또한 인간 병리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 왔습니다. 여러 가지 질병이 미생물인 박테리아에서 유래한다는 '코흐의 가설'이 발표되고 5년 만에 식물 병 또한 박테리아라는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식물이 병원성 세균 및 곰팡이류에 대응하는 PTI와 ETI 유전자들이 바이러스 인자의 인식에도 필요함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식물이 바이러스에 저항하는 방식이 다른 병원성 미생물에 저항하는 방식과 연결되어가고 있습니다. 

 

식물과 환경

목화에서 확인 할 수 있는 타원형의 세포 둘은 양 끝이 맞붙어 있는데, 두 세포 사이 공간이 벌어졌다 오므라들었다 하면서 식물 잎의 '입'역할을 합니다. 이산화탄소가 들어오고 산소와 수증기가 빠져나가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이산화탄소가 많이 들어오면 광합성을 더 많이 할 수 있어 좋을지 모르겠지만, 동시에 수증기가 너무 많이 빠져나갈 수 도 있기 때문에 식물은 환경에 따라 기공을 열고 닫는 조절 기능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가뭄에 따른 식물의 변화는 기공 개폐에 앱시스산이 미치는 영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앱시스산은 발아 억제, 휴면 촉진 외에도 식물의 생장 및 발달에도 두루 영향을 미치는 식물호르몬입니다. 여러 가지 생명현상을 동시에, 그리고 빠르게 조절하기 때문에 SnRK2 단백질이 인산화하는 기질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식물이 환경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는 경향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론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른 세포들과 마찬가지로 식물세포가 DNA, RNA, 단백질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따로 분류되던 식물학, 동물학, 미생물학을 한데 통합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단백질 수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하는 연구자들 입장에서, 세포를 깨서 단백질을 추출하고 나면, 이것이 식물에서 유래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종에서 유래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식물이라는 우주"는 식물의 생애에 걸쳐 일어나는 일을 식물학자들이 어떻게 연구해왔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과학 연구의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